우리에게 하이든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보케리니는 낯설다. 그러나 고전주의 실내악을 이야기할 때 그의 이름을 빼놓는다면 절반만 말하는 셈이다.
1743년 2월 19일 이탈리아 루카에서 태어난 루이지 보케리니는 첼로의 위상을 바꾼 연주자이자, 현악 오중주라는 장르를 확립한 작곡가였다.
18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첼로는 주로 저음을 받치는 악기였다. 보케리니는 이 악기를 무대 전면으로 끌어냈다.
화려한 기교와 유려한 선율로 첼로에 노래하는 역할을 부여했고, 스스로 연주하며 그 가능성을 입증했다.
그가 남긴 다수의 첼로 소나타와 협주곡은 당시 연주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록으로 평가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작품으로는 <현악 5중주 E장조 Op.11 No.5의 3악장 미뉴에트>다. 한때 모차르트의 곡으로 잘못 알려질 만큼 고전주의적 균형미가 돋보이는 작품으로, 단정한 리듬과 절제된 우아함으로 오늘날까지 연주회와 방송, 음반을 통해 꾸준히 소개되고 있다. 들어보면 무척 익숙한 선율로 짧은 악장 안에 담긴 섬세한 구조와 음향의 균형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하지만 보케리니의 음악 세계는 이 한 곡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그는 30여 곡의 교향곡과 100곡이 넘는 현악 오중주를 남기며 실내악 레퍼토리를 대폭 확장했다.
보케리니의 음악은 이탈리아적 선율미와 스페인적 색채가 공존한다. 그는 스페인 왕실과 인연을 맺고 마드리드에서 활동했으며, 현지의 정서를 작품에 반영했다.
마드리드 거리의 야간 음악은 도시의 소리와 분위기를 음악으로 옮긴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궁정 음악의 세련미와 거리의 생동감이 한 작품 안에서 어우러진다.
동시대 평단은 그를 하이든과 비교했다. 형식의 안정감과 균형감에서 공통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케리니는 첼로를 두 대 포함한 편성 등 자신만의 음향 실험을 통해 독자적 영역을 구축했다.
1805년 마드리드에서 생을 마감했으나, 그의 작품은 이후 재발굴과 연구를 거치며 연주 무대에 다시 자리 잡았다.
고전주의 음악사는 오랫동안 몇몇 거장의 이름 중심으로 서술돼 왔다. 그러나 실내악의 풍경을 실제로 풍성하게 채운 작곡가들까지 시야를 넓힐 때 비로소 시대의 윤곽이 또렷해진다.
보케리니를 다시 듣는 일은 잊힌 이름 하나를 복권하는 차원을 넘어, 18세기 음악의 균형을 되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