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예로부터 생명력의 상징이었지만, 한국 근대미술사에서 이토록 처절하며 생동감 있게 질주하는 말은 드물지 않을까?
바로 화가 구본웅의 ‘군마(群馬)’가 그렇다.
1906년 한성부의 유복한 집에서 태어난 구본웅은 경신고등보통학교 시절 미술에 입문하여 고려미술회의 고희동에게서 서양화를 배웠다. 화가이면서도 조각에 많은 관심을 보였던 그는 1928년 일본 유학을 통해 서구 근대미술의 어법을 흡수하기도 했다.
도쿄미술학교 수학 시절 그는 다채로운 교육을 받으며 표현주의와 야수파 계열의 색채 실험에 매혹됐고, 귀국 이후에는 당대 문학·미술 청년들과 교유하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시인 이상과의 우정은 한국 근대 예술사에서 상징적으로 남아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파이프를 문 강렬한 이상의 초상은 구본웅이 1930년대 초 그린 작품으로, 날 선 윤곽과 비대칭적 구도가 인물의 심리와 자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구본웅의 삶은 신체적 고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어린 시절 사고로 척추가 휘어서 평생 장애와 통증을 안고 살았다. 그러나 그의 화폭은 결코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굵은 검은 선과 원색의 충돌은 마치 억눌린 감정을 분출하듯 화면을 장악한다. 이는 단순한 양식적 차용이 아니라, 육체적 한계를 예술적 동력으로 전환한 것처럼 보인다.
1940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군마’는 그러한 미학이 집약된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말기라는 시대적 압박 속에서 그는 화면 가득 말을 몰아넣었다.
해부학적으로 정확하다기보다 뒤엉키고 뭉개진 형상, 거칠게 긋는 필선, 붉고 푸른 색채의 격돌은 정지된 장면이 아니라 말의 움직임 자체를 그려낸다.
말들은 동일한 개체가 아니라 집단적 에너지의 상징처럼 밀려오며, 화면은 일종의 소용돌이로 변한다.
구본웅의 그림에서 말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없는 육신의 조건, 식민지 현실의 억압, 요절한 벗을 향한 상실감 등이 교차하면서 대리적 자아로서 기능한다.
그래서 그림 속 말들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는 듯 하다.
관람객에게 강한 생동감을 불어 넣어주는 <군마>는 개인의 상처와 시대의 상흔이 어떻게 예술로 잘 승화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