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란이 피기 전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소 봄을 여읜 설움에 잠길 테요 (중략)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이 시는 김영랑(1903~1950) 시인의 ‘모란이 피기까지’다. 김영랑은 강진 출신으로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시인의 생가와 기념관은 전라남도 강진康津 읍에 있는 작은 초가집이다. 봄 마중을 위해 남도 땅 강진을 답사하는 여정이다.
겨울은 봄을 이길 수 없다. 3월 초 남도는 봄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짙은 안개에 가려진 산과 들에 봄비가 보슬보슬 내린다. 들녘과 길가에는 파란 초록빛이 엿보이는 남도의 강진 땅에 도착했다. 남도 곳곳에는 동백, 매화, 수선화 등이 피었다는 소식이다. 남도의 봄을 깨우는 소리없는 안개비에 새로운 풍경이 그려지고 있다. 자연이 제공하는 예술작품이다. 대지에 빗물이 스며들어 동백나무 꽃봉오리가 만개할 순간을 준비하고 있다.
강진을 남도 기행의 1번지라 한다. 이번 강진 답사는 백련사와 다산초당(사적 제107호)이다. 이 구간은 남파랑길 82코스 구간이다. 강진은 탐진강 유역의 비옥한 땅과 바다 갯뻘이 보전되어 있는 고장이다. 예로부터 강진은 도자기 제조업이 활발한 고을이다. 매년 3월이 열리면 강진군 도암면 만덕산 412m 백련사에는 동백나무가 꽃을 핀다.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애기 동백이다. 혹한의 계절을 이겨낸 붉은 꽃은 이곳을 찾은 수많은 관광객의 가슴을 설레게한다. 동백꽃은 작지만 아름다운 꽃이다.
강진에는 가로수가 동백나무다. 붉은 꽃이 보이지 않는다. 동백꽃이 피어나면 땅에도 동백꽃이 피어난다. 동백꽃은 나무에 땅에 사람의 가슴에 세 번 꽃을 핀다고 한다. 예년보다 올 봄 꽃 개화시기가 늦다고 한다. 동백나무도 푸른 잎만 무성하다. 백련사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더 많은 동백나무가 있다. 백련사 동백나무는 더 푸르고 더 크게 성장한 동백 숲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큰 동백나무는 처음이라며 감동과 탄성이다.
매년 2월 말이면 열리던 동백축제가 세째주 3.14~3,16에 열린다는 현수막이다. 백련사 일주문부터 동백터널이다. 동백꽃을 찾으려고 천천히 걷는다. 숲속에 붉은 꽃이 피어있는 동백이 발견하고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쳐다보고 찍는다. 귀한 꽃망울이라서 더욱 이쁘다. ‘누이야 내 죄 깊은 생각으로 내 딛는 발자국마다엔 동백꽃 모감모감 통째로 지는가 검푸르게 얼어붙은 동백잎은 시방 날 쇠리쇠리 후리는구나 누이야 앞바다는 해종일 해조음으로 울어대고 그러나 마음 속 서러운 것을 지상의 어떤 꽃부리와도 결코 바꾸지 안겠다는 너인가(생략)’ 고재중시인의 ‘백련사 동백숲길에서’ 라는 시다.
백련사 입구에는 동백나무 약 2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동백나무 숲을 따라 오르다 보면 백련사 담장이 보인다. 천년고찰 백련사다. 백련사 해탈문을 지나면 수백년 된 배롱나무가 아름다운 자태로 서있다. 무어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기품이 있어 보인다. 만세루에 올라 쪽문을 통해 배롱나무를 내려다 본다. 더 멋진 모습의 배롱나무다. 산 넘어로 그림 같이 보이던 강진만이 짙은 안개로 보인지 않는다. 아쉽다.
백련사 경내를 두루 살펴본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때 무염(801~888) 대사가 산 이름을 따서 만덕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다고 한다. 사찰 규모는 크지 않지만 고풍스런 맛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사찰이다. 고려 1232년에는 백련결사 운동이 시작된 사찰로 세상에 알려진 백련사다. 백련결사란 일반 대중에게도 불교진리를 알리게 하였던 불교정풍이라고 한다. 백련사란 만덕산이 연꽃을 안고 있는 형상에서 부르는 사찰 이름이다. 백련사는 왜구들이 수차례 침입하여 폐허가 되었던 수난의 역사가 있는 고찰이다.
백련사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전, 부도전, 명부전, 삼성각, 천불전, 범종각, 만경루 등이 있다. 백련사에는 조선 숙종 7년(1681)에 세워진 보물 제1396호 백련사사적비도 있다. 고려사기에는 고려 공민왕의 왕자가 이곳 백련사에서 기거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조선 세종 때에는 세종의 둘째 형인 효령(1396~1486)대군이 8년간 백련사에 기거했다는 전통 있는 사찰이다. 백련사 경내를 나와 동백나무 숲길을 따라 오솔길로 접어들면 넓다란 차 밭이 있다.
차 밭에서 시작되는 숲길은 사색과 명상의 다산 오솔길 1.2km이다. 쉬엄쉬엄 다산초당을 향해 걷는다. 오솔길은 백련사 혜장(1772~1801)스님과 다산초당의 정약용(1767~1836)선생이 다산초당과 백련사를 오가던 길로 애틋한 사연이 담겨 있다고 한다. 두 분은 서로를 그리워하며 하루에도 수시로 오갔던 길이라고 한다. 두 분은 차를 마시며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짓던 길로 무척 아름다운 길이다. 다산초당 오솔길은 설렘이 있는 역사의 길로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탐방로다.
다산초당(사적 제107호)은 다산이 11년 동안 유배(1808~1818) 생활을 했던 곳이다. 오솔길에는 나무뿌리가 들어나 보인다. 숱한 세월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작은 고개에 오르면 해월루 전망대가 있다. 해월루(2007년)에서 다산초당을 향해 내려간다. 조금더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다. 천일각에 올라 강진만을 내려다 보는데 안개로 인해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아름다운 강진만을 상상 속으로 그려본다. 천일각은 남양주 다산기념관 입구에도 있다.
다산은 천일각에서 한양을 바라보고 고향을 생각했다는 망향의 정자요.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형 정약전(1758~1816)을 생각한 정자라고 한다. 천일각에서 조금 더 걸어가면 다산초당 동암 송풍루(다산 거처, 2,000여권 서적)가 있다. 작은 연못 연지와 다산초당이 있다. 다산초당은 신유박해 때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며 제자들을 가르쳤다는 초당이다. 다산은 이곳에서 목민심서와 경세유포 등 500여 권의 책을 저술했던 실학의 산실이다. 다산초당 아래에는 서암 다성각(제자들 숙소)이 있다. 다산은 18명의 제자를 길러냈다고 한다.
다산초당 뒤 큰 바위에는 정석丁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다산 선생이 직접 새긴 글이라 한다. 정석이라는 글자의 의미는 없지만 자신의 성 정丁 자를 따서 새긴 글이라고 한다. 작은 연못 연지에 물이 흐른다. 차를 끓여 마셨다는 약천이다. 예전에는 물길따라 대나무 수로가 이색적이었지만 지금은 함석 위로 물이 흐르고 있다. 세월의 변천사라 할 수 있다. 다산초당은 한 폭의 동양화 같은 집이다. 다산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옆방에는 ‘타관은 가구하나 목민지관은 불가구야라’는 글이다. 목민심서 제1장에 나오는 글이라고 한다. 다산초당의 현판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글씨라고 한다.
다산 정약용과 혜장선사 두 분은 종교와 나이를 뛰어넘은 소통과 교류를 신뢰였다고 한다. 다산茶山이라는 호는 예부터 만덕산에는 야생차가 많아 다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의 다산이라는 호는 여기서 유래된 것이다. 만덕산 애기동백은 11월 말부터 피기 시작하여 이듬해 3월까지 만개한다. 백련사에서는 다도체험 등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이 전통적으로 인기가 있다는 설명이다. 다산초당 아래 입구에는 다산박물관이 있어 다산의 역사를 알 수 있다. 다산은 혜장스님이 젊은 나이 39에 요절한 후에는 초의(1786~1866)선사와 교류가 깊었다고 한다.
봄비는 하루종일 주적주적 내리고 있다. 강진만의 갈대가 보고싶어 새롭게 단장되었다는 강진만생태공원으로 이동한다. 생태공원도 안개비로 인해 시야가 별로지만 나무테크길을 따라 갈대 숲길을 걷는다. 아름답게 조성된 공원이다. 강진만생태공원은 생태계의 보고로 1,130여종의 다양한 생물 서식지라 한다. 두 마리의 커다란 백조가 있는 곳까지 두루 살펴본다. 생태공원은 남파랑길 84코스로 사초리 바닷가다. 갈대숲에 짱뚱어 모습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귀가 길 차에 올라 차 창밖 봄비에 젖어 본다. 강진은 참 많이도 다녔던 추억의 고장이다. 1993년에 출간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번지라는 책이 있다. 교수는 1번지를 강진을 얘기했다. 그게 궁금하여 32년 전 책을 들고 강진. 해남, 완도, 진도 등 남도 땅을 답사했던 적이 있다. 되돌아보면 소중한 기억이고 아름다운 추억이었다. 새 봄을 맞아 추억 속의 자아를 찾아 나섰던 강진 땅, 또다른 추억을 안고 돌아가는 답사길이다. 백련사와 다산초당에서 잃어버린 해답을 일부 찾았다.
백련사에서 다산초당까지의 오솔길은 삼남대로 유배길(55km) 일부 구간이다. 강진에는 곳곳에 맛깔스럽고 가성비 높은 맛집이 많다. 특히 수십가지의 반찬이 나오는 한정식이 으뜸이다. 강진에 가면 꼭 가바야 할 볼거리가 즐비한 고장으로 강진에도 8경이 있다. 8경은 1경인 강진만을 비롯하여 금곡사, 백련사, 다산초당, 보은산439, 석문산272, 주작산428, 만덕산408m 등이다. 강진 8경 중의 8경인 만덕산 기슭에 3경인 백련사와 4경인 다산초당이 있어 강진의 으뜸 관광지라 할 수 있다.
강진에는 강진 8경 이외에도 고려청자 도요지와 김영랑시인 기념관, 가우도출렁다리 등이 유명하다. 무한의 생선을 맛볼 수 있는 마량포구는 연중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강진은 월출산은 물론 나주, 영산포, 해남, 진도, 완도, 목포 등과 연계할 수 있는 교통요지다. 새봄을 맞아 강진 답사길은 또다른 삶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답사길이었다. 머지 않아 강진의 또다른 속살을 보기 위해 다시 찾을 기회를 생각하며 강진 답사를 정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