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서북쪽에는 대한민국 문화도시로 선정된 홍성군이 있다. 홍성읍에는 천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하고 있는 홍주읍성이 있다. 홍성에는 의로운 역사와 아픈 역사가 혼재하는 여행길이 조성되어 있다. 예로부터 홍주라는 이름은 내포 지역의 중심지로 고려 현종 9년(1018)부터 불렀다고 한다. 홍성에는 진산 용봉산(381m)이 있다. 용봉산은 용과 봉황의 두가지 형상의 이미지를 의미하는 이름이다. 용봉산 아래에는 2012년 말에 건설된 내포 혁신도시가 조성되면서 충남 도청소재지가 이전했다.
홍성은 높은 산이 없으며 낮은 구릉지와 평지가 많은 고장이다. 서쪽에는 서해와 맞닿은 천수만이 있어 산과 바다로 형성된 도시다. 이 아름다운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 다양한 문화가 있으며 가보고 싶은 관광지가 많은 도시다. 천년의 홍주읍성을 중심으로 역사를 이해하며 체험할 수 있는 걷기 좋은 길이 있다. 바로 홍주읍성천년여행길(8km)이다. 홍주읍성은 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쌓았다는 천년의 성이다. 이 읍성을 따라 근, 현대사의 아픈 현장을 답사하는 길이다. 아름다운 길이지만 슬픔도 많이 있는 역사길이다.
홍주읍성천년여행길은 홍성역을 들머리로 길안내 표지목을 따라가면 쉽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홍성역사는 홍주읍성을 대표하는 조양문처럼 수려하고 웅장한 전통한옥 모습이다. 답사 코스는 홍성역-생매장터-홍주의사총-매봉재-들꽃사람방쉼터-홍주향교-조양문-군청-홍주성역사관-홍화문-김좌진장군동상-버스터미널로 이어지는 역사탐방길이다.
홍성역에서 홍성 터미널을 지나 홍성 읍내를 흐르는 홍성천과 월계천이 만나는 하천이 있다. 오래전 이곳은 넓은 모래사장이었다고 한다. 1792년 신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수백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생매장하였다는 생매장터가 있다. 천주교순례길로 묵언의 길이다. 홍주읍성천년여행길은 들꽃사랑방이라는 이정표도 길잡이를 하고 있다. 천주교 생매장터를 지나 양지바른 야산 기슭에 조성된 홍주의사총의 도착이다.
홍성에는 관광도시 답게 12경과 5품, 3미가 있는 고장이라고 자랑한다. 12경은 1경의 홍주읍성을 비롯하여 남당항, 용봉산, 오서산, 죽도, 천수만낙조, 한용운시인생가지, 김좌진장군생가지, 성상문선생유허지, 고암이응로화백생가지, 홍주의사총과 수목원이다. 5품으로는 홍성한우, 광천김, 광천토굴새우젓, 유기농친환경농산물, 홍성한돈이다. 3미로는 홍성한우구이, 남당항대하구이, 새조개샤브샤브를 설명하고 있다.
홍주의사총의 창의문을 통해 의사총묘역과 웅장한 홍주 의병기념탑 앞에 숭고한 마음으로 묵례를 올린다. 의병기념탑을 둘러 본 후 잔설을 밟으며 매봉재를 향해 야산을 오른다. 매봉재길은 들꽃사랑방이라는 이정표를 따라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한파로 인해 인적이 뜸한 한적한 길이다. 소나무가 울창한 낮은 동산이 매봉재다. 최근까지 성황당이 있던 고갯길로 동학농민군의 지휘부가 있던 고개라고 한다. 들꽃사랑방 쉼터도 있다. 맨발걷기를 위한 비닐하우스 황톳길도 있다. 고려 시대 최영장군과 애마의 비극적인 전설이 있는 고개였다고 한다.
매봉재의 작은 동산 소나무길을 걷는다. 상큼한 날씨에 싱그럽다. 작은 마을의 골목길도 지난다. 마을 어귀에 홍주향교가 있다. 향교 홍살문을 따라 오르는데 향교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다. 담 너머로 향교 내부를 살펴본다. 아담한 향교 모습이다. 내부를 볼 수 없어 아쉽지만, 발길은 마을 벽화길을 따라 홍주읍성 방향으로 길을 찾아 걷는다. 홍주읍성천년역사길은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초보자는 물론 남녀노소가 가볍게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홍성여교 앞을 흐르는 월계천변에는 벚꽃길의 대교공원이 있다. 잔설이 군데군데 있는 공원길을 주민들이 편안하게 걷고 있다. 백월교를 지나 홍주읍성(사적 제231호) 조양문(사적 제431호)을 향해 걷는다. 조양문이 보이는데 위엄이 있어 보인다. 마치 서울의 남대문을 연상하게 한다. 조양문은 1870년(고종7)에 세운 문으로 읍성의 동문이었다고 한다. 홍주읍성에는 서문 경의문과 북문 망화문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파괴되었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조양문도 파괴하려고 하자 군민들의 강경한 저항으로 지금의 조양문을 보전하였다는 것이다.
조양문을 둘러본 후 홍성군청으로 향한다. 군청 앞에는 오관리 보호수 느티나무 2그루(수령 650년)가 웅장하게 서있다. 암수 한 쌍이라 하는데 기록에 의하면 홍성에서 안 좋은 일이 있을 때마다 소리를 내 울었다고 한다. 군청 뒤로 들어가면 우아한 곡선을 자랑하는 17세기의 전통한옥이 있다. 고을 일을 보던 동헌을 사용했다는 안던 안회당이다.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의 친필이었다고 한다. 안회당 후정에는 여화정이라는 정자와 왕버들(수령 300년) 한그루가 연방죽에 누워있는 와목이다. 당시 묵객들이 풍류를 즐겼다는 여화정이다. 왕버들과 여화정의 풍경은 아름다운 한 폭의 동양화다.
홍주읍성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읍성역사관과 홍주읍성감옥, 우물터를 둘러봤다. 풍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는 역사관은 홍주의 역사를 한 눈으로 볼 수 있다. 홍주의 새로운 역사를 발견하게 한다. 역사관 건너편에는 당시 감옥(고종 9년 1872)으로 사용했다는 둥글게 담장이 둘린 원옥이다. 원옥은 순교터로도 이용되었다고 한다. 감옥을 주관하던 홍주재판소는 1895년에 설치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옥 옆에는 사연깊은 우물터도 있다.
홍주읍성의 망루로 보이는 홍화문 성벽을 오른다. 읍성은 물론 홍성 시내 일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이 매우 좋은 망루다. 성안에는 소나무가 많다. 깃발이 나부끼는 성벽의 곡선이 아름답다. 홍주읍성은 조선시대 홍주목을 방어하기 위해 축성한 읍성이라고 한다. 홍주읍성 둘레는 약 1.5km, 성벽 높이는 3.3m라고 한다. 멀지 않는 곳에 홍성의 진산 용봉산이 우뚝하게 보인다. 홍주읍성천년역사길은 홍성의 역사와 문화를 자연을 느끼게 하는 아름다운 길이었다고 확인하게 한다.
홍주읍성을 한 바퀴 돌기 위해 성벽 밑을 따라 걷는다. 성 외벽에는 이 고장의 유명한 4분의 흉상이 서있다. 먼저 최영 장군(1316-1388)과 사육신 성상문(1418-1456)의 흉상이다. 두 분의 생가지는 멀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최영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 기봉사는 홍성군 홍북면에 있다. 소나무 숲이 울창하여 마치 장군의 위풍당당한 모습처럼 보인다고 한다. 매죽헌 성상문은 조선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크게 공을 세운 학자다. 성상문 생가지 고택은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홍북면 노은리에 있다고 한다.
깃발이 휘날리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백야 김좌진(1889-1930)장군과 만해 한용운(1879-1944)시인의 흉상과 마주친다. 불교시인이자 독립운동가인 한용운은 결성면 성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919년 3.1운동을 이끈 33인의 한분이다. 그에 시 님의 침묵은 잊지 못할 명시다. 김좌진 장군은 갈산면 행신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학교를 세우고 군자금을 모집하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투쟁 당시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성과를 이룩하였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후세에 전해지고 있다.
홍주읍성 성벽을 한 바퀴 돌아 망루가 있는 홍화문의 도착이다. 홍화문이 있던 자리는 원래 홍주읍성의 남문이었다고 한다. 읍성 홍화문 주변에는 소나무가 울창하다.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을 막으려고 심었다고 한다. 2013년 남문을 홍성의 미래로 상징하기 위해 홍화문으로 성문 이름이 바꾸었다고 한다. 홍화문에서 바라보는 홍성읍내 모습이 아름답다. 골목에는 이쁘게 단장된 벽화의 거리도 조성되어 있다.
홍화문에서 홍성읍내에 있는 명동상가라는 시장 거리를 둘러본다. 한파 속에서도 젊은이들의 힘찬 모습이 활기차다. 시장에는 없는 것 빼놓고는 어느 도시 시장못지않는 다양한 모습의 상가 거리다. 잠시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차 한 잔을 마시는데 청춘들이 즐기는 거리문화는 어느 대도시와 대동소이 하는 문화다. 시장골목의 분위기도 똑같다는 느낌이다. 역사의 고장 홍성의 젊은이들은 역사적인 이 고장 출신의 후예로서 손색이 없어 보인다.
명동시장에서 백야 김좌진장군 동상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주민의 답은 기가 살아 있는 듯한 당찬 모습이다. 백야의 동상 자세처럼 동작을 취하면서 알기 쉽게 가르쳐 준다. 자부심이 강한 홍성사람들의 멋을 느낄 수 있었다. 백야 동상은 홍성 오거리길에 웅장하게 서있다. 백야는 1907년 호명학교을 설립하는 등 신문학 교육으로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다고 한다. 1920년 10월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3,300여 명을 섬멸하는 등 항일독립전쟁사에서 길이 빛나는 승리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홍주읍성천년여행길은 조상들의 독립을 위한 의병활동과 박해 등 각종 역사의 현장을 재발견하게 하는 역사길이다. 가슴이 뭉클하고 역사를 재조명 하게 하는 역사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