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식품 유통 시장에서 온라인 매출이 처음으로 오프라인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이 온라인플랫폼에 맞서 지켜온 마지막 저지선까지 무너지는 모습이다.
7일 서울경제신문이 산업통상부의 유통 업체 매출 동향을 자체 분석한 결과 올해 상반기 전체 식품 매출에서 온라인 비중은 50.5%로 오프라인(49.5%)을 앞섰다. 정부가 공표하는 연간·반기 단위 자료로 확인 가능한 시점 가운데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추월한 것은 처음이다. 이번 분석은 산업부 자료의 온·오프라인 채널별 매출 비중과 각 채널의 식품 매출 비중을 결합해 전체 식품 매출의 온·오프라인 점유율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체 식품 매출에서 온라인 점유율은 2021년 31.7%에서 지난해 49.3%로 오른 뒤 올해 상반기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섰다. 그 동안 대형마트와 기업형슈퍼마켓(SSM), 백화점, 편의점 등 오프라인 유통 업체의 점유율은 68.3%에서 49.5%로 18.8%포인트 쪼그라들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온라인 장보기가 소비 습관으로 자리 잡은 영향이 컸다.
단기적으로는 대형마트 업계 2위였던 홈플러스의 영업 위축이 작용했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뒤 회생계획 가결이 지연되면서 상품 공급에 차질을 빚었다. 이어 올해 5월 10일부터 37개 점포의 문을 닫았다. 7월에는 전 점포의 영업을 중단했다가 이달 중순 순차 재개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2012년 유통산업발전법 시행으로 대형마트의 영업시간이 제한돼 온라인 새벽배송이 불가능해진 것이 이들의 온라인 전환 기회를 박탈했다고 지적한다. 월 2회 일요일 의무휴업 역시 오프라인 소비의 편의성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이 온라인 장보기로 이동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전통적인 유통 업체들이 온라인 대응을 하지 못하다 보니 경쟁력이 약화되고 소비자 권익도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오프라인 유통 업계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먹거리 장보기의 주도권까지 빼앗긴다면 오프라인 유통은 경쟁력을 잃게 될 것”이라면서 “제2의 홈플러스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더 늦기 전에 규제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월마트, 온라인 혁신으로 세계 1위 지키는데…韓은 규제에 고사 위기
오프라인 유통의 입지 축소는 식품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전체 유통업체 매출에서 온라인이 가져가는 몫은 2016년 32%에서 올 상반기 59.6%로 10년 만에 두 배 가까이 불어났다. 이 기간 대형마트 비중은 23.8%에서 한 자릿수까지 밀렸다. 백화점과 편의점, SSM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미국의 풍경은 딴판이다. 전미소매협회(NRF)가 4월 내놓은 ‘2026 글로벌 리테일 기업 순위’에서 정상에 오른 곳은 1962년 출발한 오프라인 유통의 맹주 월마트였다. NRF는 선정 배경으로 “매장 네트워크와 물류는 물론 온라인 마켓플레이스에 대한 투자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2위 아마존을 빼면 10위권은 슈바르츠그룹(독일), 알디(독일), 코스트코(미국) 등 매장을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들이 채웠다.
월마트의 저력은 온라인에서 더 두드러진다. 미국 식품 유통 전문 리서치 업체 브릭미츠클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말 미국 소비자의 식료품 지출 중 온라인 비중은 19%였는데, 이 중 월마트가 31.6%를 가져가 아마존(22.6%)을 눌렀다. e커머스가 팽창하는 국면에서도 전통 강자가 대등하게 겨루며 판을 주도하는 구조다.
국내 식품 유통시장에서 온라인 비중이 오프라인을 첫 추월한 데 대해 업계가 위기감을 감추지 못하는 대목도 이 지점이다. e커머스의 성장은 전 세계적으로 공통적인 현상이지만 유독 국내에서만 전통 유통 업체가 이 같은 흐름에서 배제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유통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던 식품 카테고리마저 주도권이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업계에서는 규제 해소의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한다.
2012년 시행된 유통산업발전법에 따라 대형마트와 SSM은 자정부터 오전 10시까지 영업이 금지되고 월 2회 의무휴업일을 지정해야 한다. 업계는 영업시간 단축과 의무휴업이 오프라인 매출 성장 자체를 눌러 e커머스 전환을 앞당겼다고 본다.
유통 업계 관계자는 “영업시간을 줄이고 격주로 쉬다 보니 매출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소비자들도 이번 주 일요일이 마트가 닫는 날인지 헷갈려 아예 발길을 끊었다”며 “온라인의 편리함 때문에 e커머스 식품 구매가 늘어난 측면도 있지만 규제로 오프라인 소비가 증발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바로잡아도 선수 없으면 무용지물”
무엇보다 오프라인 업계는 온라인 성장에서 혁신의 주체가 되지 못했다는 점을 뼈아프게 받아들이고 있다. 월마트는 미국 내 4600여 개 매장을 자체 풀필먼트센터로 활용하며 온라인에서도 주도권을 확보했다. 미국 인구의 90%가 월마트 매장에서 10마일(약 16㎞) 이내에 거주한다는 점을 활용해 온라인 주문을 매장에서 직접 배송하거나 고객이 사전 주문 후 픽업하도록 했다. 직원이 퇴근길에 배송하는 실험까지 진행하며 온·오프라인 자원을 결합했다.
이 같은 공식은 영국에서도 통했다. 칸타월드패널에 따르면 영국 대표 대형마트인 테스코는 5월 기준 현지 식품 시장점유율 28.2%로 1위를 지켰다. 2020년 2월 27.3%에서 오히려 점유율이 늘었다. 온라인 신선식품 전문 업체 오카도(2.1%)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테스코는 기존 대형 매장의 유휴 공간을 도심형 풀필먼트센터로 전환한 전략의 대표주자로 꼽힌다. e커머스와의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된 시장에서는 전통 강자가 여전히 시장을 이끌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 규제가 지속된다면 오프라인 업체의 위축을 넘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종우 남서울대 유통마케팅학과 교수는 “규제로 대형마트가 새벽배송 체계를 구축하지 못한 탓에 홈플러스의 자산가치가 더 떨어졌다”며 “지금도 인수에 관심 있는 사업자가 있다 해도 유통산업발전법이 막고 있으니 미래 투자를 하기가 겁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소비자에게 쿠팡 외에 대안이 없는 환경이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국회와 정부가 유통산업발전법을 개정해 규제를 완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지만 골든타임이 지나가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에서는 의무휴업을 포함한 기존 규제의 전면 철폐를 요구하고 있다. 유통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든다 해도 뛸 선수가 더이상 여력이 없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다”며 “선수들의 체력이 남아 있을 때 뛰게 해줘야 하고 지금이 그 마지막 순간일 수 있다”고 말했다.
